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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년만에 고향을 찾은 함미자 가수, 그의 꿈은 여전했다

한때 연변에도 있었다.

한국의 ‘소녀시대’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연변 ‘소녀가수’들의 전성시대 말이다. 당시 십대 후반 나이에 연변의 크고 작은 무대를 주름잡던 동년배가수 최려나, 박연, 함미자 가수…등등. 반갑게도 올해 연길TV음력설문예야회에는 그리웠던 그들의 련이은 등장으로 시청자들의 반가움을 샀다.

2월 7일, 기자는 그들중 가장 오랜 공백기를 깨고 고향무대에 오른 함미자(38세) 가수를 만나 그간의 묘연했던 공백기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설 쇠러 고향에 잠깐 들렀다가 다시 살고 있는 항주로 돌아가기 바로 전 날, 예고없던 취재요청에도 흔쾌히 응하며 환한 모습으로 약속장소에 나타난 함미자씨, 트레이마크(외모특징)였던 귀여운 덧이가 여전한 걸로 보니 그녀가 틀림 없었다.

“손을 꼽아 세여보니18년만에 고향무대를 찾았더라구요. 지금도 며칠전 에 록화하던 그날 밤 정경을 떠올리면 가슴이 셀레입니다. 그간 고향의 무대가 너무나 그리웠어요.”

다소 다급하게 받았던 야회 제작진의 출연제의와 마침 음력설운수 고봉기가 한데 겹치는 바람에 미처 무대록화당일에 당도하지 못해 그는 부득불 야외촬영을 거쳐 후기제작으로 합류해야만 했다. 그 또한 어떠랴! 꿈에도 그리웠던 고향무대에 설 수 있다는 기쁨에 함미자씨는 지난 2월1일 오후 연길공항을 빠져나오자 바람으로 분장실을 찾아 메이크업(분장)을 받고 한복을 바꿔입은 채 야외촬영현장으로 달려나갔다. 령하 20도를 웃도는 밤날씨인데다 얼음조각에 둘러쌓인 촬영현장에서 한복차림으로 촬영해야 했지만 환한 웃음 가시지 않고 떨리는 량손을 맞잡아 녹여가며 꼬박 두시간에 거쳐 록화를 마치는 프로다운 모습을 보였다. 그 촬영현장에는 처음으로 엄마가 노래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14살 나는 아들애와 그의 남편도 함께 했다.

“남편이 제가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처음 봤대요. 그 추위속에서도 너무나 즐거워 하던 저의 모습을 보고 지금껏 저의 가수생활을 지지해 주지 못했던 자신이 순간 미안해지더래요. 그래도 저는 사랑하는 저의 가족을 위해서라면 참고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노래하는 저의 모습을 보고 복귀를 가장 응원하는 저의 가족들인 것 같애요.”

가수로서의 재기도 간절했지만 한 가정의 참다운 안해로, 엄마로 살아가는 것 또한 녀자의 행복이 아닐가라며 수줍게 웃어보이는 그녀다. 그녀에게 있어서 가족은 항상 1순위였다.

올해 연길TV음력설문예야회에 출연한 함미자 가수(화면캡쳐)

한때 연변TV를 틀기만 하면 나오던 그녀가 홀연히 무대를 떠나간 뒤에는 대중들의 궁금증만 증폭했다. 그것도 대학시절에 과감히 중퇴를 하고 무대밖으로 사라진 그녀의 묘연한 행방은 인터넷이 그리 발달되지 않았던 시기라 그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은 더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야 알게 되였지만 함미자씨는 그때 북경의 한 연예기획사에 오디션(채용 심사)을 보고 걸(소녀)그룹으로 데뷔하여 국내 활동을 꽤나 활발히 펼쳐왔다고 했다. 당시 한국에서 크게 성공시켰던 한 걸그룹 제작자가 북경으로 건너와 중국에서도 같은 시도로 국내 걸그룹을 묶게 된 것. 꿈많은 나이에 아무도 몰래 그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덜컹 합격하게 된 함미자씨는 더 큰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천금같은 기회를 얻게 되였다.

한창 연변무대에서 청아하면서도 시원스러운 음색으로 여러 곡을 히트 시키며 맹활약을 펼쳐오던 그녀가 어느날 갑자기 무작정 도시로 진출하겠다며 고집을 피워대니 집안의 반대도 극심했다. 허나 스무살소녀의 꿈은 너무나 확고하고 집요했다.

연변대학 예술학원 시절 함미자씨(화면캡쳐)

떡잎부터 남달랐던 함미자씨는 룡정에서 태여나 6살부터 정식으로 노래를 배우기 시작해 15살 나던 해에 연변대학 예술학원에 입학하여 강신자교수를 모시고 본격적으로 전통민요를 배웠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의 힘겨운 뒤바라지로 전통민요공부를 견지했다. 화려했던 무대우의 모습과는 달리 공연한복도 가끔 동료가수들의 도움으로 빌려입어야만 했던 그녀였다. 아마 그래서 그는 하루라도 더 빨리 성공하리라는 집념 하나로 도시진출의 꿈을 품게 되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단다.

의욕은 불탔으나 현실은 참혹했다. 걸그룹생활은 지금껏 불러온 민요와는 창법부터가 완전히 달랐고 상당한 춤실력도 겸비해야 했다. 반복적으로 연습하고 또 해야만이 칼군무를 소화할 수 있었기에 그는 발에 물집이 잡히게 될 정도로 남들보다 가배의 노력으로 안무를 련마해야만 했다.

중국에는 아직 걸그룹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2000년대초에 함미자씨는 마침내‘TG4’라는 걸그룹의 멤버로 정식 국내무대에 출사표를 던지고 화려하게 데뷔했다. 다행인건 알심들인 데뷔와 더불어 반응도 꽤 좋았다. 하여‘CCTV음력설문예야회’,‘중한가요제’‘同一首歌’등 국내외 대형무대를 종횡무진하며 크게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크고 작은 행사들을 정말 많이 뛰였어요. 하지만 그때 그렇게 많은 지역을 다니며 순회공연을 하였어도 어찌하여 연변무대에는 한번도 설 기회가 없었던지. 이것이 유감으로 남아있어요.”

전국 방방곡곡의 큰 무대에서 인기가수로 큰 활약을 펼쳐온 그녀였지만 마음 한켠에는 늘 그리운 고향무대의 허전한 빈자리가 남아 있었다. TG4데뷔 5년차 되던 해에 국내 인기드라마‘家有儿女’의 OST로 다시 한번 인기몰이를 하고 그후로 팀은 조용히 해체를 맞이했다. 그 시기에 마침 자연스럽게 한 남자를 만나게 되였고 백년가약을 맺아 항주에 신혼살림을 차려 오로지 가정에만 전념한지 14년세월. 그동안 자신이 전직 가수였다는 것조차도 까먹고 드바삐 살아온 그녀에게 무대는 그리운 그제날의 이야기가 되여버렸다. 그러던중 올해 옛 동료가수의 추천으로 연길TV음력설문예야회 제작진으로부터 출연제의를 받게 된 건 가수로서의 재기의 불씨를 살려내는 일, 그런 기회를 그는 마다할리 없었다.

 
북경에서 걸그룹 TG4로 데뷔한 함미자씨(앞줄)

“록음실에 들어갔는데 예전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올랐습니다. 너무 오래간만이라 생각처럼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더라구요. 노래를 잊고 산 14년이란 시간들이 그제서야 많이 길게 느껴졌어요. 다시 마음을 눅잦히고 마이크앞에 섰는데도 만감이 교차했어요. 그래, 나는 한때 노래를 참 많이 사랑했었지…”

야회에서 보여줬다싶이 18년만에 다시 연변의 안방무대를 찾은 그의 노래실력은 녹쓸어 있지 않았다. 윤행성가수가 불러 잘 알려졌던 노래 “흰눈이 내리네(김동진 작사 최삼명 작곡 함미자씨는 자신의 음색으로 재탄생시켰다. 시간을 거슬러 다시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함미자씨는 늘 신곡보다 이미‘주인’이 있었던 노래를 많이 불렀다. 다시 말하면 리메이크(개작)다. 리메이크곡으로 원곡을 뛰여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닌데 스무살도 안되던 어린 소녀가 그런 리메이크곡을 통해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면서 이름을 날렸다.

그가 처음으로 연변TV무대에 올라 불렀던 “내고향 오솔길(황상박 작사 최삼명 작곡)”을 비롯해 “동년의 뜨락(박장길 작사 조인길 작곡)“교정의 종소리(유영호 작사 김경애 작고)등 흘러간 옛노래들은 함미자씨의 목소리로 새롭게 탄생되며 부르는 족족 히트를 쳤다. 함미자 가수는 또 고향을 뒤로한 채 집 떠나 이국타향 리비아에서 살아가고 있는 로무출국일군들의 절절한 마음을 담은 노래“언제나 고향과 함께(리상훈 작사 최삼명 작곡)”를 애절하게 불러 시청자들의 눈가를 촉촉히 적셔준 주옥같은 대표곡도 남겼다.

“이번 방송이 나간 후로 고맙게도 몇몇 감독님들이 련락을 보내와 복귀계획에 대해 물으셨어요. 사실 낯선 곳에서 여러 해동안 생활하면서 당시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의 무대를 볼 때면 고향무대가 정말 많이 그리웠어요. 기회가 된다면 저도 언젠가는 다시 고향무대에 서고 싶어요.”

스무살 꽃나이에 무대를 떠나 불혹의 나이를 앞두고 다시 찾은 연변, 그곳에는 여전히 가슴 뜨겁게 그의 노래를 반겨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새해인사와 함께 다시 무대에서 만나게 될 그 날을 기약하며 돌아서는 그녀의 소망이 하루 빨리 이루어 지길 기대해본다.

/길림신문 김영화 기자


출처 : http://kr.chinajilin.com.cn/area/content/2019-02/11/content_23701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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