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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개편이 필요한 쪽은 영어 사교육이다

[오마이뉴스 설미현 기자]

벌써 사 년 전,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하기 위해 아직 어린 세 살 된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을 때, 방과후 영어 교육이 행해진다는 것을 알고 한편 놀랐고 한편 걱정도 했었다. 고작 세 살인 데다가 한국말도 잘 못하는 어린 아들이 영어를 배워도 될까? 내 자신부터 이십 대에 영어와 일어를 같이 공부하며 혼란을 느껴서 일어를 포기한 적이 있었고, 삼십 대에 중국어를 공부하며 고전한 적도 있었기에, 어린 아들이 언어를 일찍부터 배우는 것에 대해 아무래도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곧 내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영어 교육이란 것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엄청난 수업 과정이 아니었고, 아이들에겐 그냥 글자 모양으로 생긴 장난감을 이용한 놀이에 가까웠다. 어린이집에서 세 살부터 네 살까지 방과후 영어를 배운 아들은 영어 시간을 제일 좋아했고, 영어 선생님을 아주 잘 따랐다. 어린이집의 정규 선생님이 아니고 어린이집마다 돌면서 출장 교육을 했던 그 영어 선생님이 고마워서 얼굴도 한 번 못 봤지만 선물을 전달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아들이 다섯 살이 되어 유치원에 진학했는데, 아들의 '영어 선생님을 잘 만나는' 행운이 계속 되었다. 이번에도 영어 선생님이 정말 잘 가르치시는 모양인지, 아들의 영어 발음과 단어 실력이 나날이 부쩍 늘어가는 게 느껴졌다. 여전히 아들은 영어 시간을 제일 좋아했고, 영어 선생님을 무척 좋아했다. 방과후 교육 프로그램 설명서를 펴 놓고, "블록, 축구, 미술, 그리고 영어 등이 있어, 뭘 할래?" 하고 아들에게 묻자 "영어!"하고 즐거워할 정도였다.

사실 유치원에서 영어는 여섯 살 짜리들을 대상으로 연 수업이었지만, 아들이 하도 원해서 아들과 아들 친구 중 원하는 다섯 살 짜리들도 그 수업을 듣게 됐다. 그 영어 선생님은 정말 열의가 있는 분이셔서 나중에 학부형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이들이 어떤 태도로 어떻게 수업을 즐겁게 해 나가고 있는지 일일이 설명해 주시기도 했다. 그 꼬마들이 수업이라고 할 게 뭐가 있다고! 하지만 선생님도, 학부모도, 모두 진지하게 임했던 상담이었다.

이 과정에서 영어를 가르치지 않고 국어에만 집중해야 겠다고 생각했던 내 원래 방침이 일부 수정되었다. 엄마와의 책 읽기, 말하며 교감하기는 계속 진행하되, 한참 흥미를 갖는 영어도 어느 정도 병행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배운 영어 방과후 교육' 덕분에 내 교육 철학이 수정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들이 좋아하던 시청각 교재를 이용해서 집에서 파닉스 교육을 병행했다. 딱히 어마어마한 것은 아니고 아들이 영어 노래로 구성된 파닉스 교육을 볼 때 억지로 끄거나 방해하지 않고, 잘한다고 칭찬해 주며 같이 노래하고 춤추며 놀아준 수준이다. 간혹 발음이 잘못 나올 때 혀의 구조를 활용해서 교정해 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아들의 파닉스가 완성되어 갈 즈음 우리는 상하이에서 일하고 있던 아빠에게로 가게 되었다. 처음에 한국어를 안 쓰는 유치원에 갔다가 아들이 정서적으로 힘들어한다는 것을 깨닫고, 한국어를 주로 쓰면서 영어와 중국어를 병행하는 유치원으로 서둘러 옮겼다. 아들은 여전히 영어를 좋아했고, 원어민 선생님과도 잘 소통하면서 유치원에 잘 다녔다. 집에서도 보조를 맞추기 위해 영어 숙제를 함께 하는 것은 물론, 학원에도 가 보고 과외 선생님도 데려 보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동시에 써 보았다.

그러나 아들은 사교육은 금방 싫증을 냈다. 싫어하는 것은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 게 내 방침이어서 싫어하면 시키지 않았다. 그렇긴 해도 아무래도 외국에 살고 있어 영어를 안 가르칠 수 없었다. 게다가 우리 부부가 가정에서 일부 영어로 소통하고 있어 향후 부모와 소통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도 아들이 영어로 말할 줄 알 필요가 있었다.

이제 일곱 살이 된 아들은 작년에 영어(하)반에서 영어(상)반으로 옮겼다. 상하이로 온 지 일 년 동안 아들은 차근차근 영어를 즐기며 배웠다. 지난 크리스마스 발표회에서는 영어로 노래 부르는 공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들의 한국어가 부족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영어를 강요해서 배운 게 아니고 스스로 놀이하듯 습득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어가 튼튼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가운데 영어도 자연스럽게 생활에 스며 들었다. 물론 영어만 쓰고 배우는 아이들보다는 영어 실력이 당연히 딸리지만, 영어와 중국어까지 함께 쓰면서 익히는 삼중 언어 환경에서는 세 개 언어가 골고루 느리게 성장하거나, 아니면 내가 선택한 것처럼 엄마의 언어가 중심을 이루고 나머지 언어는 천천히 성장하는 게 맞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정도로 걱정 없이 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이 한국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좋은 영어 선생님들께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 고마운 과정들이 없었더라면 어디서부터 아들을 가르쳐야 할 지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영어의 첫 단추를 잘못 뀄더라면 지금 타향에서 아들의 교육을 어떻게 할 지 몰라 쩔쩔 매고 있지 않았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한국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엄마라고 해서 내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유치원 상급반에 아이를 보냈거나, 초등학교 일 학년에 아이를 막 보낸 엄마들이 아마 비슷한 맘을 품을 텐데, 아이가 유치원 방과후 영어 교육을 통해 무사히 영어 공부에 안착한 경우 다들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미명 아래 유치원 방과후 영어 교육을 금지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접하자니 마음이 착잡해진다. 아이들이 3학년 때가 되어서야 영어를 시작하게 하고, 그 때까지 선행 학습을 금해서 공교육의 체계를 다시 세우겠다는 정부의 선한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동 시대의 아이들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적 대안이다.

세계화는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되었고, 지금 자라나는 어린이 세대는 한국 안에서 한국말만 하고 살 세대가 결코 아니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술술 할 필요는 없더라도 영어로 기본적인 의사 소통은 할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를 위해서 어릴 적부터 편안하게 영어를 접하는 것은 괜찮은 전략이다.

너무 어릴 때부터 접할 필요가 있느냐, 열 살 부터 다함께 배우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무척 맞는 말이나, 현실은 모두가 서너 살 때부터 영어를 시작하지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다. 만일 공교육을 통해 배우지 않으면 모두가 - 정확히 말하자면,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모 모두가 - 영어 사교육을 제공하는 학원을 찾아 나서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른이 되었을 때 영어로 나뉘었던 '보이지 않는 계층 장벽'은 아예 어린 시절부터 만들어지게 될 지도 모른다.

모두가 공평하게 열 살부터 공부하는 영어는 이상에 불과하고, 현실은 알파벳과 발음 다 떼고 영어로 술술 말하는 아이들과 알파벳도 겨우 읽는 아이들이 한 교실에 앉아 '불공평하게' 열 살부터 영어를 시작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 능력과 자신감에서 현저히 차이를 보일 것이고, 남과의 비교에 한참 예민한 열 살 때 이렇게 치르는 불공평 경쟁에서 나중에라도 제대로 실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만일 정부의 취지대로 공평하고 과열되지 않은 영어 교육을 열 살부터 제공할 생각이라면, 그 전에 행해질 수 있는 모든 영어 사교육을 단속할 근거안을 함께 내놓아야 할 것이다. 다짜고짜 잘 이루어지고 있는 영어 공교육부터 개편할 것이 아니라, 공평한 교육을 방해하고 있는 사교육부터 손질하고 그 다음에 공교육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개편하는 것이 제대로 된 수순이다.

이런 식으로 만약에 방과후 영어 교육이 폐지되었다가 몇 년 후 필요에 의해 부활되기라도 한다면, 그 사이 유치원을 다니게 될 아이들만 손해를 입게 될 것이다. 비슷한 예로, 지금 60대 이상인 어르신들 중에서 정부에 의해 한글몰입교육이 도입되었던 시기에 한자 교육이 3년 정도 중지되는 바람에, 다른 연배의 어른들에 비해 한자를 덜 배운 분들이 계신 게 생각난다.

인생이 늘 동갑내기들하고만 살아가는 게 아닌데, 까딱하다가 앞으로 몇 년 간 유치원에 가야 할 꼬맹이들은 억울하게 영어 실력이 떨어지게 되는 거나 아닌가 모르겠다. 부디 관계자들은 제도를 개선해서 사람들을 끌고 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제도의 영향 아래 놓인 사람들의 여러 말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들의 필요를 반영한 정책을 세워 주었으면 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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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oid=047&aid=0002174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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